260302 The One Thing 북클럽 1주차

진리로 통용될 만한 방법론 같은 건 없다는 주의여서인지 신봉하는 인물도, 신봉하는 책도, 신봉하는 사상도 없다. 각각의 방법이란 다양한 형태로 깎여 나온 테트리스 블록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란 언제나 다채로운 형태로 빚어지는 것이라, 어떤 블록이 그 상황에 가장 들어맞을지는 대봐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블록을 수집해두면 시도해 볼 경우의 수가 늘어나니 나쁠 것이 없다. 블록을 직접 수집하여 관찰하기 전에는 그 형태를 스스로 상상하거나 추론할 수 없는 지능의 한계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나는 지식 간의 화학 작용으로 새로운 형태를 빚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블록을 갖다 대보고 맞는지 안 맞는지를 관찰하는 단순 노동자에 더 가깝다. 그리고 오늘 수집한 새로운 블록이 바로 The One Thing인 셈이다.

나는 이 지독한 외곬수들의 삶에 대해 익히 아는 바가 있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눈은 대부분 반쯤 맛이 가 있어서, 교류하기가 지극히 까다롭다는 것. 문제는 이 책이 바로 그 외곬의 미덕을 정면으로 옹호한다는 점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말을 실제로 실천한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면, 한쪽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 대신 다른 쪽이 심하게 무뎌져 있는 경우가 잦았다. 집중이란 결국 나머지를 버린다는 뜻이고, 버려진 것들 중에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 때 그 대가는 꽤 크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일종의 경계심이 있었다. "원씽"이라는 제목 자체가 가진 강한 단언이 나 같은 유보주의자에게는 거북하다. 세상에는 원씽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고, 한 가지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머지를 정하지 않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이 먼저 든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이 말하는 "한 가지"는 내가 경계하던 그 외곬과는 결이 달랐다. 평생 한 가지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레버리지가 큰 한 가지를 식별하라는 말에 더 가까웠다. 고정된 신념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질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 중에서, 그것을 함으로써 나머지가 더 쉬워지거나 불필요해지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구조는 생각보다 정교했다.

테트리스에 비유하자면, 외곬수는 하나의 블록만 쥐고 판을 내려다보는 사람이다. 반면 이 책이 말하는 원씽은 지금 이 판에서 가장 먼저 끼워야 할 블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우선순위의 문제에 가깝다. 그것도 단순히 지금 쌓여 있는 판의 형태에 가장 잘 맞는 블록을 고르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 이 블록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다음 블록이 들어갈 자리가 달라지고, 그 자리가 또 그 다음을 결정한다. 결국 원씽이 말하는 "한 가지"는 눈앞의 빈칸을 메우는 일이 아니라, 이후에 따라올 블록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판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블록 자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순서와 흐름에 대한 감각.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물론 아직 첫인상일 뿐이다. 이 책이 끝까지 그 정교함을 유지하는지, 아니면 결국 "집중이 답이다"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수렴하는지는 더 읽어봐야 안다. 새 블록을 수집했으니 이제 내 상황에 갖다 대보는 일이 남았다. 상상력이 빈약한 나로서는 맞는지 안 맞는지를 언제나 대봐야 알 뿐이다.

이론을 현실에 이식하는 과정은 대개 스마트하지 않다. 블록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안 맞으면 모서리를 깎고, 깎다 보면 원래 블록의 형태는커녕 본질마저 잃는, 그런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런 참담한 사태에 대해선 유월님의 현장 경험이 1차적인 방책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북클럽을 해나가는 분들과의 토론이 정교한 마무리가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열심히 예쁜 블록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