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10 The One Thing 북클럽 2주차

대부분의 이론들은 모델화된다. 이 세상에 너무 많은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고, 그 모든 변수를 고려한 방대한 내용은 책 몇 권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이론일수록 오히려 과감하게 생략한다. 현실의 복잡함을 전부 담으려는 책은 백과사전이지 이론서가 아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이 책의 명제도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모델이다. 멀티태스킹의 비효율을 지적하고, 도미노 효과처럼 하나의 핵심 행동이 연쇄적으로 나머지를 해결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지만,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는 만능 열쇠라고 믿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론에서도, 사람에서도,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입증 책임을 가지지 않는 평범한 개인의 영역에서, 그런 시비 따위는 항상 부차적인 문제다. 결국 나는 모든 학술적 토론의 객관적 가치를 격하시켜서 "나에게 유익한가, 무익한가"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유익한지 무익한지는 단순히 나 개인의 상황과 맥락에 국한된 특수한 일일 공산이 크므로, 이 판단이 이론의 보편적 가치에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태도는 사실 유월님이 말씀하신 '그럴듯함'이라는 개념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럴듯함이란 객관적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심리다. 우발적이든, 우연적이든, 의도적이든, 거짓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 이것은 경고의 맥락에서 언급됐지만, 나는 오히려 그 경고를 인지한 채로 받아들인다. 확증 편향의 위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책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나에게 쓸모 있는 조각이고, 그 조각이 엄밀히 따지면 내 상황에 대한 확증 편향의 산물이라 해도 별 상관이 없다. 궁극적인 목적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그래서 내가 더 행복해지는가"라는 나만의 궁극적인 'One thing'이기 때문이다.

어제 언급된 망상활성계의 필터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더 선명해진다. 망상활성계는 구글 검색창과 비슷하다고 설명하신 걸로 얼핏 기억하는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 키워드를 걸어놓으면, 뇌가 그 키워드에 해당하는 정보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를 전부 걸러낸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이 책은 생산성에 관한 책이다"라는 필터를 걸어놓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내 기존 관점으로만 읽게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다. 나의 경우 그 필터는 하나로 수렴한다. '내게 유익한가'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만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내 잘못된 기존의 관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내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점, 내가 찾고자 하는 유익함은 무엇인가 자문해 보았다.

모든 우발적인 일은 내가 준비되길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우발적이다.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고, 특히 사람이 관련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연히 환경을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야 하겠다. 하지만 그런 환경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은—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이 더욱 그렇다—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흐트러지는 집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다. 말하자면, 예상치 못한 일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단서는 여러 개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 떠오른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우선순위를 설정 혹은 재설정하는 작업 자체를 반복 숙달하는 것이다. 큰 목적을 가지고 지금 당장 쓰러뜨릴 첫 번째 도미노를 고르는 것이 쉬울 리는 없겠지만 66일이면 하나의 습관을 쌓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노력해볼 만한 자신이 있다. 1주차 회고에서 언급한 거처럼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을 예측하며 판을 짜듯이 말이다. 이 추론 혹은 질문을 반복하는 훈련이 습관화되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들이닥쳐도 우선순위를 변경하고 실행하는 데 드는 인지적 부하가 최소화될 수 있다. 결국 집중이란 한 방향을 유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비용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심리적, 육체적 여유를 확보한다. 역설적으로, 여유는 남는 자원이 아니라 핵심에 집중한 결과로 생겨나는 자원일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일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여 확보된 여유와 잔여 의지력 등을 통해 올바른 의사 결정에 필요한 필요충분한 에너지를 예비해둘 수도 있다. 여유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돌발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해 주는 완충지대다.


결국,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부가가치는 집중이 무너지고,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 밖의 일이 밀려올 때에도 빠르게 "지금의 한 가지"를 재설정할 수 있는 근력을 기르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일의 방식을 조성하되, 설령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함께 기르는 것.

66일 후에 좀 더 나아진 나를 기대해 본다.

피드백

유월 1:50 PM

wow, 빠르고 예리한 후기 고맙습니다. 햐양님의 글을 2번 읽었는데, 하양님의 스타일이 느껴져서 후기 읽고 직관적으로 든 생각을 따지지 않고 거칠게 공유해봅니다. --- 진실이 아닌 거짓의 ‘유용성’은 단기적일 확률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 모순되는 ‘유용성’의 상황이나 조건을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수(守)의 기준을 ‘유용성’ 하나 이외의 다른 것을 고려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제 Productivity의 기준을 time, Energy, Focus 3가지로 Venn Diagram화 했던 것 기억나시죠 ^^ 최근 이런 상황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 True?
  2. Useful?
  3. Kind?

Pasted image 20260310204502.png

제 방식으로 수정한 version은 아래와 같습니다.

  1. Right?
  2. Necessary?
  3. Helpful?
  4. Friendly?

제 기준 or 방식으로 햐양님의 기준은 ‘(Necessary +) Helpful’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하양님도 기준을 확장해보시거나, 이미 활용하고 계신 다른 기준들을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양하 8:39 PM

말씀하신 지적에 공감합니다. 다만 제 글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유익하면 수용한다'는 느낌으로 읽혔다면, 표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The One Thing의 명제를 무조건 믿거나 거부하는 게 아니라, 상황별로 선택 기준의 가중치를 다르게 두겠다는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유월님의 질문을 듣고 보니 저 또한 하나의 기준만으로 우선순위를 판단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분절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고, 이번 피드백이 그 계기가 됐습니다. 유월님의 Right / Necessary / Helpful / Friendly 프레임을 빌려서 제 방식으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Right — 이성적으로 옳은가 논리적으로 맞는 판단인가. 다만 옳음이 항상 최선은 아닙니다. Useful — 나에게 유익한가 제 글의 핵심 필터이자 가장 솔직한 기준입니다. Sustainable — 관철했을 때 판이 유지되는가 유월님의 Friendly와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것은 친절의 문제라기보다, 이 판단을 밀어붙였을 때 전체 상황이 지속 가능한가의 문제입니다. 이성적으로 옳고 나에게 유익하더라도, 관철하면 누군가와의 관계가 깨지거나 상황 자체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성적으로 옳은 선택지를 내려놓고 상황적으로 나은 선택지를 택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Timely — 지금이 맞는가 옳고, 유익하고, 지속 가능하더라도 때가 아니면 유보합니다. 핵심은 이 네 가지가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에는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특히 사람이 관련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제가 글에서 "확증 편향의 위험을 알면서도 선택한다"고 썼던 것은 기준이 하나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황마다 어떤 기준을 우선하고 어떤 기준을 유보할지를 유동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에 더 가까웠습니다. 벤 다이어그램에서 Time · Energy · Focus의 교집합이 The Real Productivity라는 데에는 언제나 동의합니다. 다만 현실에서 항상 그 교집합 안에서 선택할 수는 없기에, 저는 상황을 대하는 기본값을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덜 이상적인 상황에 맞춰둔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효율적 삶'에 너무 집착할 때를 돌아 보면, 나의 효율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게 스트레스였거든요. 그래서 항상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는 거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