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3 The One Thing 북클럽 후기

The One Thing은 단순한 책이다. 핵심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 중에서, 그것을 함으로써 나머지가 더 쉬워지거나 불필요해지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책에서는 초점질문(Focusing Question)이라 부른다. 책 전체가 이 질문 하나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데에 바쳐져 있다.

단순하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다. 이 질문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목적의식(Purpose)이고, 다른 하나는 우선순위(Priority)다.
‘왜 하는가’가 분명해야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가 명확해진다.
목적 없는 우선순위는 방향 없는 속도와 같다.

우선순위를 정했다면 그다음은 도미노다.
성공을 역산해서 보면, 정말 중요했던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첫 번째 도미노가 넘어지면 두 번째가 따라 넘어지고, 두 번째가 세 번째를 밀어낸다.
이 책이 말하는 집중은 한 방향을 고집하라는 뜻이 아니라, 연쇄를 일으킬 첫 번째 조각을 식별하라는 뜻에 가깝다.


이 도미노를 제대로 세우려면 질문의 크기와 초점이 모두 필요하다.
책은 이것을 ‘Big and Specific’이라는 말로 압축한다. 10년 후를 내다보는 큰 그림 질문(Big Picture)과, 그 목표를 위해 오늘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작은 초점 질문(Small Focus).
이 두 개의 렌즈를 동시에 들이대야 도미노의 첫 조각이 보인다.

여기서 목표를 어디에 놓느냐가 갈림길이 된다.
이미 할 수 있는 일(Doable)에 머물면 성장이 없고,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Impossible)는 동기를 꺾는다.
그 사이에 Stretch Zone이 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뼘 더 먼 곳.
압도적인 결과(Extraordinary Result)는 그 지점에서 나온다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스마트함보다 용기다.


책이 경고하는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멀티태스킹에 대한 지적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믿음. 책은 이것을 성공을 가로막는 거짓말 중 하나로 분류한다.
뇌는 동시에 두 가지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빠르게 전환할 뿐이며, 그 전환에는 매번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전환이 잦아질수록 각각의 일에 쏟는 집중의 질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계속 내 책상을 떠올렸다.


지금 내 작업 환경에는 27인치 모니터 3대와 윈도우 PC 1대, 맥북 1대가 있다.
원래 서버 및 RPA, 에이전트용 미니 PC도 구동했으나, 유지보수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해 기존 작업은 모두 SaaS 활용으로 노선을 바꿨다. 원씽의 관점에서 보면 잘한 선택이다.

Windows PC는 하드웨어 설계와 문서 작업 등을 위해 사용한다.
설계에도 AI를 접목했다. AI가 잘못 만든 부분만 수정하는 식으로 개입을 최소화한다. 못하는 건 계속 못하므로, 필요한 경우에는 스킬이나 지침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문서는 노션이나 옵시디언으로 관리한다. 노션 자체 AI에 Opus가 들어오면서 문서 작성의 피로도가 급감했다.
에이전트를 활용해 프로젝트 문서를 정리하면서부터는 늘 문제였던 문서의 정합성 또한 현재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를 통해 특히 GitHub과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직군과 개발 직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원활해졌다.
모든 걸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개인 업무, 설계, 그리고 업무 문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에이전트 시스템이나 수동 작업을 이쪽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

모니터 2개가 연결되어 있는 맥북은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 사용한다.
모니터 하나에는 tmux 터미널이 열려 있다. 인간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디자인, 아키텍처 설계, 기타 기획이 확정되지 않은 기능 구현 등을 진행한다.
다른 모니터 하나에도 tmux 터미널이 열려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반복 작업이나, 도메인이 확실히 분리되어 병렬 작업이 가능한 일, 코드 리뷰, 혹은 QA 등의 작업을 에이전트 주도로 진행한다.
맥북 자체에는 Cursor IDE나 LLM, 혹은 에러 로그를 열어 놓는다. 중간중간 AI의 작업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경우, 혹은 내 지식이 모자라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경우에 활용한다. 작업이 진행되는 세션에 직접 물어보면 불필요한 context 낭비가 생기기 때문이다.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순 없지만, 개략적으로는 이런 형태로 매일 일을 한다.
주식 트레이딩처럼 시스템화가 가능하고 정형화된 API 기반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복잡한 업무 환경 구성도 가능할 것이다. 개별적인 일의 특성이 모두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의심 가는 지점이 참 많다. 변명하듯 왜 이렇게 하는지까지 설명하면서도 말의 뒷맛이 쓸 수밖에 없다.
분명히 잘못된 부분도 있을 테고, 잘못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테지만, 그것을 완전히 이분법으로 나누기란 쉽지 않다.


원씽을 읽는 내내 이 작업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내 업무 환경이 ‘한 번에 하나’에 위배되는가를 한참 고민했지만, 당장 업무 방식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현재 내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다는 결론만 냈을 뿐, 고민 자체는 여전하다.

이 환경이 멀티태스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 또한 하나의 질문이다.
모니터가 세 대라는 건 물리적 배치의 문제이고, 원씽이 경고하는 멀티태스킹은 한 사람의 주의가 동시에 여러 곳으로 쪼개지는 인지적 상태를 가리킨다.
내 환경을 돌아보면, 에이전트가 맡은 터미널은 내가 안 보는 동안에도 돌아간다. 나는 그 사이에 기획이나 설계처럼 사람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일에 붙어 있다.
여러 개의 접시를 동시에 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접시를 돌리는 손이 나 하나만은 아닌 셈이다.
결국 모니터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주의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비싼 비용을 치르며 전환되느냐가 진짜 문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작업 환경은 원씽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설계된 것에 가깝다.
에이전트에게 넘길 수 있는 일, 즉 반복적이고 되돌릴 수 있으며 깊은 판단이 필요 없는 일은 내 주의 바깥으로 빼고, 남은 주의력을 지금 가장 임팩트가 큰 한 가지에 쏟는 구조다.
도구가 늘어난 만큼 한 곳에 주의를 모을 여지도 함께 커졌다.

물론 이건 이상적인 해석이다.
현실에서는 에이전트가 에러를 뱉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확인하게 되고, 코드를 자동으로 리뷰해주는 에이전트의 알람이 뜨면 슬쩍 눈이 가고, 결국 확인할 수밖에 없다.
환경을 아무리 잘 짜 놓아도 주의는 샌다. 완벽한 격리란 없다.
다만 새는 것을 전제하되, 새는 양을 줄이는 쪽으로 환경을 계속 다듬어 가는 것. 그게 이 업무 방식 안에서 내가 원씽을 실천하는 가장 현실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답이 깔끔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아마 당분간은 이 고민을 안고 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있다. 문제는 환경의 복잡함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다.
물론 이것도 어쩌면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만족스러운 답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북클럽 도중에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낳는다는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
실제로 유월 님이나 다른 참가자분들로부터 얻은 좋은 질문들을 떠올리면서, 내 방향과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고, 질문을 통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북클럽 첫 시작과 함께 유월 님이 설명해주셨던 ‘수파리’를 떠올린다.
수파리(守破離)는 원래 전통 예술이나 무도에서 쓰이던 말로, 배움의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먼저 ‘수(守)’는 기본을 지키는 단계다. 가르침과 형식을 충실히 따르며 몸에 익히는 시기다.
그다음 ‘파(破)’는 배운 틀을 의심하고 깨뜨려 보는 단계다.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마지막 ‘리(離)’는 틀에서 벗어나는 단계다. 익힌 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더 이상 형식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상태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이 북클럽에서 내가 계속 붙들고 있는 질문들도 비슷한 궤적 위에 있다.
처음에는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그것을 내 현실의 업무 방식 안에서 어떻게 깨뜨리고 다시 세울지를 묻고 있다.
원씽을 무조건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환경에 맞게 다시 해석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아직 ‘파’와 ‘리’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직 통과 중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26년 3월 말 마지막 원 라이브 클럽과 함께 이 북클럽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때까지 나는 계속 이 북클럽을 이어 갈 것 같다.
형식은 끝났어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