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원 북클럽 2회차 후기

책을 마저 다 읽고 2주차 북클럽을 시작했다.
혼자 읽을 때 종이 위에 멀거니 부유하던 문장들이, 유월 님의 입을 통과하면 질문의 형태로 바뀌어 내 앞에 놓인다.
추상에서 구체로 옮겨지는 이 과정이, 혼자 글을 읽을 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 뒤에 자세히 풀겠지만 그 입심은 유월 님의 무기이자 이 북클럽의 엔진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독자인 내가 책을 제대로 읽게 만드는 꽤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사실 이런 글쓰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딱히 뭔갈 많이 깨닫지도 못한 주제에 짐짓 깨달은 척을 하기가 싫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짜 깨달은 게 별로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역설적으로 글이 더 명확해진다.
뽐낼 결론이 없으니 문장을 부풀리고 떠벌릴 이유도 사라진다.
책의 논지에 억지로 나를 맞추려는 욕심도 덜어진다.
그래서 이번 후기는 강의의 흐름을 따라가며 유월 님이 던진 질문들을 정리해 두는 쪽에 무게를 뒀다.


오프닝: 변화는 왜 그렇게 어려운가

유월 님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이야기로 시작됐다.
대학 간 선배가 "저 활달해졌어요"라며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은 "그 정도면 많이 변한 거야"라고 하셨다는 이야기.
한 사람이 대학 4년을 보낸 뒤에야 주변이 겨우 알아챌 정도의 변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어요.” 라는 농담이 괜히 나온 건 아닐 테다.

유월 님

"엄청나게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제로투원이 얘기하는 게 변화잖아요."

나를 포함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10년, 20년을 경쟁 프레임 속에 살아왔다.
이 프레임은 관념이고 이데올로기이자 거의 종교 수준이어서, 한 번 깨달았다고 바뀌기 어렵다.

여기서 돈오점수(頓悟漸修) 이야기가 나왔다.
깨달음은 순간일 수 있어도, 그 깨달음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10년, 20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점수돈오(漸修頓悟) 가 있다. 수행을 쌓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온다는 쪽.

제로투원은 돈오의 영역을 건드리는 책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 내 현업에 안착하려면, 결국 점수의 시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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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는 거지 한 마디에 정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유월 님이 던진 전제

깨달았더라도 한번 더 물어야 한다. "이게 나한테 필요한 얘기인가?"


프레임과 프레임워크: 동그라미·세모·네모

2주차에서 가장 밀도 있었던 구간은 프레임과 프레임워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북클럽의 숨은 목적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유월 님은 제로투원이나 원띵 그 자체보다, 이 두 책을 통해 프레임과 프레임워크를 훈련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먼저, 프레임과 프레임워크는 다르다

한국어로는 거의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역할이 다르다.

구분 프레임 (Frame) 프레임워크 (Framework)
역할 관점, 세상을 보는 렌즈 도구, 생각을 정리하는 격자
가시성 보이지 않는다 (꺼내야 보인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예시 경쟁 프레임, 무기 프레임 2×2 매트릭스, 벤다이어그램
바뀔 때 신념 체계가 흔들린다 분류가 달라진다

프레임이 먼저 정해지고, 그 위에서 프레임워크가 작동한다.
경쟁 프레임 위에 그린 2×2 매트릭스는 아무리 예뻐도 결국 "쟤보다 내가 낫게" 수준에서 멈춘다.
그래서 프레임을 의심하는 눈과 프레임워크를 설계하는 손은 따로 길러야 한다.

프레임워크의 기본 문법: 세 개의 도형

프레임워크는 아무 모양이나 되지 않는다. 인간이 세상을 추상화할 때 반복해서 쓰는 세 개의 도형이 있고, 각 도형이 담을 수 있는 사고가 다르다.

도형 기하적 성질 표현하는 사고 대표 도구
동그라미 경계가 있되 겹칠 수 있다 관계 · 공통 · 종속 벤다이어그램
세모 위아래·앞뒤가 나뉜다 차이(Δ) · 위계 계층(하이어라키), 피라미드
네모 직각 칸막이가 생긴다 분류 · 정량화 2×2 매트릭스, 수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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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도형은 각기 다른 사고를 담는다 — 겹침(관계), 위계(차이), 칸막이(분류).>

도형을 잘못 고르면 생각이 왜곡된다.
조직도를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리면 위계가 사라지고, 교집합을 피라미드로 그리면 관계가 등수로 바뀐다.
"이 문제는 어떤 도형으로 그려야 하는가" 가 사고의 출발점인 이유다.

네모 계열 안에서도 2×2 매트릭스와 수직선은 성격이 다르다.
2×2는 축을 질적으로 갈라 뭉뚱그리는 도구다. 같은 사분면 안의 두 점은 같은 취급을 받는다.
수직선은 한 축 위에 점을 찍어 정량화한다. 같은 구간이라도 점과 점은 엄연히 다른 값이다.
0 to 1과 1 to n을 수직선 두 개로 풀면 정량이 살지만 직관이 죽고, 2×2로 접으면 직관은 살지만 정량이 뭉개진다.
프레임워크를 고를 때 이 둘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네모에 축을 하나 더: 큐브와 세그멘테이션

네모에 세 번째 축을 쌓으면 큐브가 된다.

  • Y축 — Subject(주체): Personal / Professional / Organization. 개인으로서의 나, 프로페셔널로서의 나, 조직 단위에서의 내 일.
  • X축 — Time(시간): Past / Present / Future. 지금까지 해온 것, 하고 있는 것, 할 것.
  • Z축 — Theme(테마): 내가 각 주체 안에서 붙들고 있는 이슈·관심사의 카테고리. Theme 1, 2, 3.

예컨대 Personal 안에서는 건강·재무·관계, Professional 안에서는 커리어·스킬·네트워킹, Organization 안에서는 매출·문화·전략 같은 식이다.
사람마다 테마 목록은 다르다. 중요한 건 "내 삶·일을 구성하는 큰 주제 3개를 고르는 행위" 그 자체다. 고르는 순간부터 내가 무엇에 에너지를 쓸지가 정리된다.

세 축을 교차시키면 3×3×3 = 27개의 칸이 생긴다. "Personal × Present × 건강" 한 칸, "Organization × Future × 전략" 한 칸,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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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축이 교차하면 27개의 큐브 칸이 생긴다. 각 칸이 세그먼트, 그 중 하나를 고르면 타겟팅이다.>

깍두기처럼 나뉜 칸 하나하나가 세그먼트고, 그 중 하나를 골라 자원을 집중시키는 게 타겟팅이다.
구조 자체는 마케팅 교과서의 STP 전략과 같지만, 유월 님이 강조한 건 이 격자를 남의 시장을 쪼개는 도구가 아니라 내 삶을 쪼개는 도구로 쓰는 훈련이었다.

그리고 27칸이 처음부터 다 채워질 필요는 없다. 어떤 칸은 내 경험이 풍부해서 금방 채워지고, 어떤 칸은 비어 있다.
비어 있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출발점이다. 내가 어디에 관심이 몰려 있고 어디가 빈틈인지 지도화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지금의 차이

과거에는 저 27칸을 내 경험만으로 메워야 했기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은 Gen AI가 일단 채워주고, 내가 검증하며 꼬리표를 붙여가면 된다.
내 이론과 현업이 겹치는 칸이 많아질수록, 그게 곧 실력이 된다.

프레임워크마다 결이 다른 이유

세 도형을 알고 나면, 유명한 프레임워크들이 어떤 문법 위에 서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프레임워크 기반 도형 무엇을 구분해주나
커네빈(Cynefin) 네모 (구역만) 없음 Clear / Complicated / Complex / Chaotic 네 문제 유형
스테이시 매트릭스 네모 (2축) Certainty × Agreement 논리적 문제 해결 vs 정치적 의사결정
조하리 창 네모 (2축, 확장) 자기 인식 × 타인 인식 경청·피드백으로 양쪽의 미지 영역을 동시에 깨나감
BCG 매트릭스 네모 (2축) 시장성장률 × 점유율 사업 포트폴리오 분류
벤다이어그램 동그라미 없음 교집합 = 기회 영역

같은 네모라도 커네빈은 축이 없어 질적 판단을, 스테이시BCG는 축이 있어 좌표 찍기를 요구한다. 조하리 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사분면 경계 자체가 확장되는 구조다 — 피드백과 경청으로 미지 영역을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어낸다.

축이 있느냐 없느냐, 경계가 고정이냐 확장이냐 — 이 차이만으로도 프레임워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제로투원이 말하는 "경쟁 대신 독점"은 조하리 창처럼 사분면 경계 자체를 밖으로 밀어내는 게임에 가깝다.
남이 그려놓은 2×2 위에서 점수를 다투는 대신, 판 자체를 새로 그린다.

우리는 보통 어디서 문제를 푸는가

컨설턴트의 영역은 대부분 Complicated다. 인과관계를 여러 번 따라가면 답이 나오는 영역.
그런데 제로투원은 Complex 존을 다룬다. 스마트함보다 용기(courage) 가 필요한 곳.
똑똑한 애들은 굳이 Complex 존에 오지 않는다. 돈이 될 지조차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탐험(Exploration) vs 활용(Exploitation)

여기서부터 제로투원을 이해하는 지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탐험과 활용을 제일 먼저 이야기한 사람은 교수의 교수라고 일컬어지는 James March 교수다.
Invincible Company(Osterwalder)와 The Design of Business(Roger Martin)에서 빌려온 구분이기도 하다.

Exploration (탐험) Exploitation (활용)
Complex Complicated / Clear
답을 창조 답을 활용
게임 유일한 내 것 누가 누가 잘하나
포커스 Search Efficiency, Growth
리스크 High Low
자금 철학 Risk-taking, Few outsized winners Portfolio, Steady return
잘하는 것 반복 실험, Rapid adaptation 플래닝, 시뮬레이션, 딜리버리
실패 빠른 실패 → Learning Failure minimal

제로투원은 명백히 왼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오른쪽에서 살아왔고, 오른쪽에서 성과를 내는 법만 배웠다.
두 세계는 거의 완전히 다른 규칙을 쓴다.

유월 님

"여긴 답이 있는 세상이고, 저긴 답이 없는 세상이에요.
여긴 답을 창조하는 세상이고, 저긴 답을 활용하는 세상이에요."


바닥구간, 그리고 활주로

책을 설명하는 그림 중 유월 님이 가장 고집스럽게 교정하는 지점이 있다.
흔히 탐험 존을 선형으로 상승하는 곡선으로 그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탐험 구간의 전반부는 활주로를 질주하는 비행기에 가깝다.
엔진을 풀로 땡겨도 고도는 1도 올라가지 않는다. 계기판만 보면 실패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바닥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끝이다. 양력이 중력을 이기는 순간까지 버텨야 이륙한다.

유월 님

"믿어야 돼요, 내가. 그래야 브레이크 안 밟아요. 그래야 내가 이륙할 수 있어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가 왜 스타트업 판에서 그렇게 쉽게 유통되는지 감이 온다.
감성 구호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다. 양력이 중력을 이기기 전까지는 계기판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유월 님의 해석을 빌리면, 이 여정은 세 구간으로 나뉜다.

  • 바닥구간 = Creating Values → 0 to 1 Tech 혹은 10X Tech로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
  • 제프리 무어의 캐즘(Chasm) = Delivering Values → Sales, Marketing 등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영역
  • 제프리 무어의 Majority = Capturing Values → 글로벌화로 가치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영역

캐즘이 얼리어답터와 주류 사이의 절벽이라면, 유월 님이 말하는 바닥구간은 그보다 앞에 있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 아이디어가 숫자로 바뀌기 전, 내가 나를 의심하는 지점.

그래서 이 영역에는 5가지 흔한 신화(Myth)가 따라붙는다.

  1.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 — 그건 Exploitation 세계의 기준이다.
  2. Clear path가 있을 것이다 — 없다. Magically emerge하지 않는다.
  3. Small number of big bet으로 가면 망한다 — 작게 많이 질러야 한다.
  4. Exploitation처럼 진행하면 된다 —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5. 혁신은 배신자나 해적의 몫 — 정상인도 해야 한다.

한 10년치 데이터로 보면 혁신 프로젝트는 대략 이런 분포다.

  • 10개 중 6개는 돈을 잃는다
  • 10개 중 3개는 조금 번다
  • 1000개 중 4개가 50배 이상 터진다

1,000번을 질러 단 4번. 여기에 독점(Monopoly) 조건까지 걸면 확률은 더 내려간다.
그럼에도 Expected return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게임이 성립한다.


제로투원의 공식

앞서 바닥구간에서 나눴던 Creating / Delivering / Capturing 3구간을 시간 순서가 아닌 제로투원의 축으로 옮겨 그려보면 아래처럼 된다. 같은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셈이다.

  • Zero to One (Y축) = 수직 진보 = Creating Values by Technology → 기술에 의한 가치 창출
  • Zero to One (X축) = 수평 진보 = Delivering Values by Sales, Marketing → 세일즈/마케팅에 의한 가치 전달
  • One to N = 수평 확장 = Capturing Values by Globalization → 글로벌화에 의한 가치 유지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Value는, 판매(Sales) 라는 벡터와 합쳐질 때만 고객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복제되면서 1 → N으로 퍼진다.
그래서 제로투원은 기술 책처럼 보여도, 결국 뒷부분은 세일즈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영업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대체로 이 말에는 동의하고 있다.

유월 님

"기술로 가치를 창출(Creating Values)하고,
세일즈로 가치를 전달(Delivering Values)한 후
글로벌화로 가치를 획득 & 유지(Capturing)해야 해요.
내 몫은 20밖에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3개가 곱해져야 하기 때문에, 3개 모두 잘해야 돼요."


미래 이익

유월 님

"모든 걸 흔들 때 기준이 되는 건 하나예요. 미래의 이익."

Last Mover Advantage의 한 단어 요약이 바로 이것이다.
퍼스트냐 라스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래에 이익이 남느냐가 본질이다.

왜 삼성전자가 구글보다 2배 많이 버는데 구글의 시가총액이 삼성의 2배일까?
기업가치란 결국 망할 때까지 벌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 합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매출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오래 얼마나 가파르게 벌어갈 수 있는가가 가격을 만든다.

독점의 역설

잘나가는 독점기업은 "우리 그렇게 많이 안 벌어요"라고 죽는 소리를 한다.
반독점법에 걸리기 싫어서다. 구글의 전체 글로벌 광고시장 점유율은 3.4%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경쟁에 허덕이는 기업은 "우리 시장 이만큼 커요"라며 파이를 과장한다.


독점 자본주의라는 모순

여기서 유월 님이 던진 질문 하나.
독점과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고전 자본주의의 전제는 (1) 자유 경쟁, (2) 공정한 시장, (3) 다수 참여다.
이 셋이 만나는 교집합이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다.

그런데 제로투원은 이 전제 자체를 깐다.
상품의 가치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1배짜리, 2배짜리, 10배짜리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가 섞여 있는데 경쟁이 성립할 리가 없다.
결국 가치가 큰 쪽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고, 자연스럽게 독점이 태어난다.

그래서 미국 경제는 두 힘 사이에서 줄타기 한다.

  • 특허법 → 독점을 20년간 보장
  • 반독점법 → 독점을 해체

이 사이의 빈틈에서 "Why not?"을 외치는 책이 제로투원이다.


독점 기업의 네 가지 조건

1주차에서 정리했던 네 요소가 다시 나왔다. 이번엔 시작 전략과 함께였다.

요소 핵심 비고
Proprietary Technology 2등 대비 10배 격차 가장 중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Network Effect 많은 사람들이 쓸수록 가치 증가 카카오톡, 쿠팡
Economies of Scale 고정비 분산 하드웨어·제조업 유리
Brand 복제 불가능한 정체성 애플

그리고 전략 순서:

  1. 독자 기술 10x로 시작
  2. 니치(틈새시장)에서 독점
  3. 스케일 업
  4. Don't disrupt — 네가 스스로 와해되지 말 것

마지막 4번이 결정적이다.
디스럽티브 이노베이션(Disruptive Innovation) 은 흔히 "파괴적 혁신"으로 번역되지만, 원래 크리스텐슨의 의도는 와해적 혁신에 가깝다.
대기업이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부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오버스펙을 찍는 동안 스타트업이 로우엔드에서 올라와 메인스트림에서 만나는 그 교차점이다.

유월 님

"니가 성공을 하더라도, 그래서 여길 뚫어서 올라왔더라도, 그대로 가면 안 돼.
이때쯤 오면 너도 새로 시작해야 돼. 와해되지 않도록 네가 지켜야지."

마이클 왓킨스의 《The First 90 Days》가 "새 자리에 앉으면 90일 안에 장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너질 때쯤 시작하면 이미 차는 떠났다.


경쟁이라는 프레임, 무기라는 비유

유월 님

"프로페셔널로서 꼭 갖고 싶은 무기가 뭐예요?"
"그 무기로 누굴 죽일 거예요?"

무기는 본래 사람을 죽이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쟁(War)에서 왔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비즈니스를 전쟁 프레임으로 받아들이고, 경쟁자를 '죽일 대상'으로 그리며 살아왔다.

유월 님의 제안은 프레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무기가 아니라 도구. 칼을 무기로 쓸지 도구로 쓸지는 내 선택이다.

유월 님

"경쟁자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고객한테 어떻게 잘해줄지를 생각해라.
연애로 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거지, 라이벌을 연구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제로투원의 모든 개념이 절반만 작동한다.
경쟁 프레임 위에 독점을 얹으면, 결국 "어떻게 쟤를 이기고 독점할까"가 되고, 진짜 독점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Fact와 Truth는 어떻게 다른가

유월 님

"Fact는 객관적 사실이고, Truth는 해석과 의미가 더해진 사실이에요."

그래서 고객 조사에서 Verbatim(고객의 원문 그대로) 을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해석한 결론만 들고 오면, 그 해석의 프레임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Fact → 프레임 → 프레임워크 → 해석 → 의미(Truth) 의 전체 체인을 보여줘야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정치가 극단화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같은 현상(Fact)을 봐도 프레임이 다르면 Truth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Truth는 종교 수준으로 단단해서, 목숨을 걸 만큼 바꾸기 어렵다.

제로투원의 핵심 질문 —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은 동의하지 않는 것" — 이 Truth의 영역이라는 것을 이번 주에야 더 선명히 알겠다.


준비된 우연, 세렌디피티

"운에 기대지 말고 설계하라"가 이 책의 뼈대지만, 그렇다고 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월 님은 LuckSerendipity를 분리했다.

  • Luck: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원인도 불명확한 순수한 우연
  • Serendipity: 내가 뿌려둔 씨앗이, 언제 어떤 경로로 돌아올지 모른 채 반드시 돌아오는 것

인맥에 시간과 돈을 쓰는 행위.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고 멘토링을 해주는 일.
그것이 언제 어떤 자문단, 어떤 평가로 돌아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건 순수한 운이 아니라 내가 원인이 된 우연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10,000시간"만 기억되는 탓에 오해되지만, 그 책의 진짜 주장은 성공 = 재능 ×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 우연의 타이밍이라는 것이었다.
만시간의 법칙 원저자(Anders Ericsson)도 강조한 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의도적 연습이었다.
나심 탈레브가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가차없이 걷어내려 한 것도, 순수한 Luck을 Serendipity인 척 포장하는 자기 서사였다.
피터 틸은 그 양쪽 사이에 선을 긋는다. 운에 기대지는 말되, 준비된 우연이 쌓일 표면적은 계속 넓혀라.


현실에 질문해 보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나는 충분히 분석했는가, 남들이 다하는 실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한다.
대부분의 이론과 프레임워크는 바로 현실에 대입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유월 님은 그 간극을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으로 열어 준다.

떠오르는 질문들
  • 나는 지금 Exploration 존에 있는가, Exploitation 존에 있는가?
  • 내가 지금 밟고 있는 건 활주로인가, 아니면 이미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가?
  • 내가 만드는 가치에서 Creating과 Capturing 중 약한 쪽은 어디인가?
  • Subject(개인·프로페셔널·조직) × Time(과거·현재·미래) × Theme의 27칸 중, 내가 가장 비워둔 칸은 어디인가?
  • 나는 경쟁자를 연구하고 있는가, 고객을 연구하고 있는가?
  • 내가 갖고 싶은 '무기'는, 도구로 재정의될 수 있는가?
  • 같은 Fact를 두고 내가 도달한 Truth와, 다른 사람의 Truth는 어디서 갈라지는가? 그 차이는 어떤 프레임에서 비롯됐는가?
  • 내가 지금 뿌려두고 있는 Serendipity의 씨앗은 무엇인가? 순수한 Luck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마무리

결국 이번 주 내 손에 남은 건 깔끔한 요약본이 아니라, 처리가 안 된 몇 개의 질문 꾸러미다.
일부러 E-book 대신 종이 책을 샀다.
한 번 읽고 치울 게 아니라, 질문이 막힐 때마다 앞뒤로 뒤적거리며 오래 보게 될 것 같아서다.
유월 님이 던진 질문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장 사이에 끼워 넣고 있다.
당분간은 이 질문들을 일상 더 가까이에 두고 조금 더 서성거려 볼 생각이다.
어차피 변화는 어렵고, 나는 아직 깨달은 척할 준비가 덜 됐다.
그 준비가 끝나는 날,
오랜 점수가 돈오로 승화했을 그때에 내가 자랑스레 또 다른 후기를 남기고 있을지, 아니면 이미 사업을 성공시켰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복잡스레 생각할 게 뭐 있겠는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