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투원 북클럽 3회차 후기

Pasted image 20260422101633.png
《대부》는 결혼식 장면으로 열린다.
딸 코니의 피로연이 벌어지는 바깥 정원, 비토 코를레오네의 어두운 서재에는 청탁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선다.
첫 손님은 장의사 보나세라.
딸을 해친 자들에게 복수해 달라며, 돈은 얼마든 내겠다고 말한다.

비토의 반응은 예상과 다르게 흐른다.
“왜 경찰에 가지 않았나.”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덧붙인다.
“왜 나를 친구라 부르지 않았나.”

돈 이야기는 뒤로 밀리고,
대화는 관계 이야기로 옮겨간다.

보나세라는 그제서야 태도를 바꾼다.
거래가 아니라 부탁의 형식을 취하고,
비토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Pasted image 20260422101550.png
<돈으로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친구"라고 부르고 나서야 비토의 문이 열린다.>

"마피아가 되어라." 라는 다소 과격한 챕터 제목과 함께 시작한 북클럽.
단어만 떼어 놓으면 불온하지만, 맥락에 얹으면 이번 주의 축이 그대로 드러난다.
독점은 미래의 이익을 지키는 구조물이고, 그 구조물을 지탱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
기술도 브랜드도 아니고, 같은 미래를 같은 각도로 보는 소수의 인간 집단.
피터 틸이 8장 Secret에서 9장 Foundations로 책을 끌고 가는 흐름이 여기서 한 줄에 꿰인다.
미래 이익을 지키려면 Secret이 필요하고, Secret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이 사람이고, 그 사람이 결국 마피아 패밀리가 되어야 한다.

유월 님

"벤 호로위츠의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가 말한 가장 어려운 일도 결국 사람이에요.
피터 틸도 당연히 읽었을 거고, 여기서 말하는 기초는 여러 가지지만 굳이 꼽으면 사람이에요.
가족하고는 달라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이때 잘못 뽑았어? 망해요. 거의 그 톤의 매너예요."

짐 콜린스가 《Good to Great》의 "First Who, Then What"

어디로 갈지 정하기 전에 버스에 누구를 태울지부터 정하라, 부적합한 사람은 내리게 하고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앉혀라.
그 다음에야 방향을 묻는다.
피터 틸의 언어가 더 과격할 뿐, 뼈대는 같다. 채용이 전략보다 먼저다.

이 선을 따라가기 전에, 유월 님은 한 가지를 먼저 확인하자고 했다.
비즈니스 마인드셋 — 그걸 피터 틸은 어떻게 다루는가.


Mindset이 아니라 Mindshift

유월 님은 “Mindset”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set’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어긋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한 번 설정해 놓고 끝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월 님

"마인드셋 아니에요. 마인드시프트예요. Set 해서 고착시키는 게 아니라, 계속 옮겨 다녀야 돼요."

지금 이 시간만큼은 피터 틸의 입장으로 옮겨 가 그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
그 중 무엇을 받고 무엇을 버릴지는 내 몫이지만, 적어도 이 시간에는 그의 프레임으로 이동해 봐야 한다.
특히 3주차부터는 창조자의 입장에서 투자자의 입장으로 시점이 바뀐다는 귀띔도 있었다.
피터 틸이 벤처 캐피탈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 전환을 놓치면 뒷부분이 헛돌기 시작한다.


해자와 독점: 워렌 버핏과 피터 틸 사이

참가자 한 분이 워렌 버핏의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와 피터 틸의 독점 개념에 대한 비교 질문을 했다.
네트워크 이펙트, 브랜딩, 규모의 경제 — 요소만 보면 피터 틸이 말하는 독점 기업의 4요소와 거의 겹친다.
그런데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워렌 버핏의 해자 피터 틸의 독점
전략 안정 투자, 경쟁우위 확보 경쟁 자체를 불허
대상 저평가된 우량기업 10배 격차의 기술기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분산 몰빵·집중
전제 "저평가를 알아보자" "저평가될 리 없는데 딜리버리가 약한 것뿐"

워렌 버핏은 "우량 기업이지만 싸게 나온 걸 찾자"고 하고, 피터 틸은 "우량한데 저평가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한다. 같은 그림을 정반대의 프레임으로 읽는 셈이다.

유월 님

"엘레먼트만 보면 비슷해 보이죠. 맥락은 완전히 달라요.
엘레먼트도 보고, 시추에이션(맥락) 도 봐야 상호작용이 보여요."

이 대목에서 유월 님은 본인을 "상호작용파"로 소개했다.
요소(Element)만 보는 것도, 상황(Situation)만 보는 것도 위험하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 결국 비즈니스의 본질이라는 것.
그래서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 제약 조건 이야기가 반복해서 튀어나온다.


가치는 X or Y가 아니라 Mix다

이건 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이지만,
누군가 "경제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가 충돌할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유월 님의 답은 단호했다.

유월 님

"X 아니고 Y, 이거 되게 위험한 생각이에요.
깨지는 공과 깨지지 않는 공, 둘 다 다뤄야 돼요."

우리가 가진 가치는 한두 개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윤리·종교.
비즈니스 안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첫 번째에 올 뿐, 나머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4P 믹스처럼 이 가치들도 믹스해서 들고 다녀야 내 것이 된다.
2주차에 나왔던 프레임 이야기와 같은 결이다. 하나의 렌즈만으로는 세상이 왜곡된다.


돈의 흐름을 쫓아라 — 거듭제곱의 세상

"Follow the Money"는 "돈의 길목을 지켜라"처럼 번역될 뻔한 문장을 잘 피해 갔다.
여기서 흐름은 시계열이다. 시간축 위에서 돈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그 시간 그래프를 읽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그래프는 선형이 아니다. 거듭제곱(Power Law).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불리곤 하는 ‘복리 이자’ 그 법칙이다.
소수가 압도적으로 다수를 능가하는, "Extraordinary Stock Pattern."

토막 상식으로 유월 님은 한국어로 "파레토 법칙"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오역에 가깝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원어는 Pareto Principle이다. 법칙이 아니다. 검증된 자연·사회 현상의 패턴이지, 물리 법칙처럼 증명된 게 아니다.
유월 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익스트림 파레토.

유월 님

"1번, 2번, 3번, 4번… 10번이 있다면, 1번 하나가 전체 결과의 50%를 가져가요.
나머지 9개를 다 합친 것보다 1번이 커요.
근데 왜 자꾸 2번, 3번, 7번, 23번을 하려고 해요?"

원 띵에서 그렇게 반복해서 때리던 도미노 이야기와 같은 논리다.
피터 틸의 버전은 더 급진적이다. "첫 번째 것만 해라. 두 번째는 아예 잊어라."


BEP, ROI, 그리고 평균이라는 거짓말

시선을 보드로 옮겨서 BEP(손익분기점)와 ROI의 관계를 다시 그렸다.
고정비와 변동비가 합쳐진 총비용선, 그 위에 포개지는 총매출선.
둘이 만나는 점이 BEP. 그 전까지는 Capital Period(투자 기간), 그 후부터가 Return Period(회수 기간).

교과서적으로는 직선이지만 현실은 들쭉날쭉이다.
과학은 이 들쭉날쭉을 평균선으로 그어버린다. 그래서 평균이라는 개념이 위험하다.
평균이 만든 매끈한 곡선은 눈을 속인다.

_assets/bep-plan-vs-actual.svg
<점선이 교과서의 평균선, 실선이 현실의 누적 곡선이다.
같은 게임이지만 비용은 평균보다 빠르게 쌓이고 매출은 평균보다 늦게 붙는다.
그래서 평균선 위 BEP는 한참 전에 지난 듯 보이지만, 실제 BEP는 그 너머에서 뒤늦게 찍힌다.
>

여기에 거듭제곱이 포개진다.
VC의 펀드 수익 분포를 정규분포로 생각하면 안 된다.

_assets/power-law-distribution.svg
<왼쪽은 우리가 기대하는 정규분포, 오른쪽이 실제로 작동하는 거듭제곱. 이 간극이 투자를 망친다.>

피터 틸

"성공한 펀드의 가장 잘한 투자 하나가, 나머지 전부를 합친 것보다 크거나 같다."

이 문장이 이번 주 핵심이다.
개인의 커리어로 번역하면, 내가 가장 잘하는 역량 하나가 나머지 역량 전부를 합친 것보다 큰 돈을 번다는 뜻이기도 하다.


뿌리고 기도하지 말고, 작살을 들어라

거듭제곱의 세상에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는 지혜가 아니다. 무지의 표현이다.
여러 곳에 조금씩 투자하는 Spray and Pray Approach — 뿌리고 기도하는 방식.
유월 님은 이걸 삼성전자 시절의 비유로 옮겼다. "투망 던져서 아무거나 걸리는 걸 잡자."

작살은 다르다. 50%짜리 가치가 있는 한 놈이 누군지 찾아내서 그 한 놈에게 꽂는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필요한 것은 천재성(Genius)이 아니라 용기(Courage) 다.

피터 틸

"Singular Pursuit. 하나에만 몰빵해라.
시장이든, 프로덕트든, 유통이든, 시간이든, 의사결정이든."

인빈서블 컴퍼니의 그림이 다시 소환됐다.
275분의 1. 아웃라이어에 투자하지 않으면, 희귀한 회사는 처음부터 놓친다.
그물을 쳐도 걸리지 않는다. 평균 영역에만 그물이 닿기 때문이다.


지각된 가치 — 고객의 머릿속 상한선

거듭제곱 이야기에서 갑자기 "고흐 그림 얼마에 살래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유월 님이 여기서 꺼낸 개념이 Perceived Value(지각된 가치) 다.

이번 주의 핵심 한 문장

고객은 Actual Value를 지불하지 않는다.
고객이 주관적으로 지각한 가치(Perceived Value) 만 지불한다.
그 상한선을 모르면 비즈니스는 로또가 된다.

내가 아는 한 경영학 교수는 "경영학 전체를 한 단어로 줄이라면 Perceived"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제품이 누구에게는 1억의 가치이고 누구에게는 100만 원의 가치라는 사실은 취향이 확고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Actual을 모르면 비즈니스를 못 하지만, Perceived를 모르면 돈을 못 번다.

그래서 플랫폼 비즈니스가 터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비스업은 원래 복리로 증가하기 어려운 업태다. 그런데 서비스를 제조업처럼 복제 가능하게 만든 것이 플랫폼이었다.
카카오톡, 쿠팡, 애니팡이 그 시대의 첫 세대였고, 지금은 AI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애플 케이스: 점유율 32%에 이익률 94%

2013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2%의 애플이 전체 산업 이익의 94% 를 가져갔다.
삼성전자가 점유율 15%에 이익 11%, 둘을 합하면 105%.
3등부터는 전부 적자였다는 뜻이다.

Market Share Profit Share
Apple (2013) 32% 94%
Samsung (2013) 15% 11%
나머지 50%+ -5%

<세션에서 공유된 AI 참조값(검증X). 정확도보다는 분포의 모양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쓰였다.>

이건 경영학 교과서에 설명이 없는 현상이다. "점유율 32%가 이익 94%를 가져가는 모델"은 애플이 2010년대 초에 이미 필드에서 해버렸는데, 아직도 이론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월 님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필드가 먼저고, 교수는 뒤에 설명하는 사람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은 사후 분석에만 능하다는 오래된 농담이 불현 떠오른다.

왜 LG 가전은 문을 닫고 삼성은 버텼는가

마켓셰어와 이익 분포가 거듭제곱을 따르면, 2등이 상위에 얼마나 가깝냐에 따라 생존이 갈린다.
삼성은 반도체·가전·무선의 재벌식 포트폴리오로 애플 하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케이스가 되었고, LG는 스마트폰에서 누적 적자를 10년 버틴 끝에 결국 접었다.
2등의 이익률이 애플 이익률을 100에서 뺀 여집합 안쪽이어야 살아남는다는 잔인한 산수다.


발견하지 못한 비밀 — 세 원의 교집합

"독점할 만한 것"을 피터 틸은 Secret이라 부른다. 비밀.
그리고 이 비밀은 세 원의 교집합이다.

_assets/secrets-venn.svg
<중요하고, 아직 소수만 알며, 어렵지만 할 수 있는 것 — 세 조건이 동시에 겹치는 좁은 영역이 Secret이다.>

원 띵의 Doable과는 다르다

원 띵에도 Doable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뜻이 다르다.
원 띵에서는 Doable–Stretched–Possible의 3단계 중 가장 아래, 즉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가리킨다.
제로투원의 Hard but Doable은 Possible에 가까운 난이도다. "어렵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

3C(Company·Customer·Competitor)의 벤다이어그램과도 포개 볼 수 있다.
"경쟁자도 있지만 고객이 원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한다. 거기에 시간을 쓰면 안 된다.
제로투원의 버전에서 경쟁자는 아예 지워진다. 진실(Truth) × 소수만 아는 것(Uncommon), 그 교집합이 새 좌표가 된다.


우리는 왜 비밀을 찾지 않는가

피터 틸이 지목한 네 가지 관습.

  1. 점진주의(Incrementalism) — 조금씩 개선하려고만 한다. 새 영역을 뚫지 않는다.
  2. 위험 회피(Risk Aversion) — 혼자 틀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외롭고 옳기보다 같이 틀리기를 택한다.
  3. 무사안일(Complacency) — 제도권 엘리트가 되면 1%까지는 못 가도 10% 안에는 들기 때문에, 굳이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4. 평평화(Flatness) —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면 애플이 진작 했겠지"라는 체념. 세상이 다 연결됐다고 믿는 순간 나만 볼 수 있는 틈이 없어진다.

이 네 가지는 2주차에서 본 Complex 존을 피해 Complicated 존으로만 이동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은 굳이 Complex 존에 오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잠깐 머무는 것조차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월 님

"야,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면 LG가 생각 안 해봤겠어? 애플이 생각 안 해봤겠어?
삼성에서 저 말이 제일 자주 나왔는데, 제 경험으로는…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물건이 안 나왔어요."


숨겨진 비밀을 찾는 법

별거 아니다. 유월 님이 구본형 선생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소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묻기
  • 너무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다시 분해하기 — 제1원칙 사고
  • 사람이 말하지 못하는 불편을 관찰해서 찾아내기

호텔만 숙소가 되는 게 아니다. 비어 있는 남의 집 소파도 숙소가 될 수 있다. Airbnb 이전에 "카우치서핑"이라는 사이트가 이미 있었다.
마켓컬리, 오늘의집, 당근, 우버 — 다 쉽다. 하드웨어도 아니고 기술 비약도 아닌데, 왜 그 전에는 아무도 안 했을까.
이 질문이 습관이 되는 것, 그게 비밀을 찾는 법의 전부다.


기초, 그리고 마피아

비밀을 찾았다면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혼자서는 못 한다.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그 파트너가 파운더 팀이고, 잘 굴러가면 마피아 패밀리가 된다.

피터 틸

"결혼처럼 파운더를 골라라.
그리고 버스를 만들지, 탈지를 정하고, 언제 타고 언제 내릴지도 정하라."

페이팔의 스톡옵션 에피소드로 넘어갔다.
페이팔은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뿌렸다. 하지만 진짜 접착제는 옵션이 아니었다. 미션이었다.

PayPal의 미션

"정부가 아닌 개인의 디지털 화폐."

이 한 줄이 스톡옵션보다 강력했다.
오늘날 비트코인의 스피릿과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하나의 태스크, 한 명의 책임자" 원칙.
일은 협업으로 하지만 결과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귀속시킨다.
유월 님은 이 원칙이 돌아가려면 채용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월 님

"구글한테 10년 동안 물었어요. 어떻게 직원을 교육시키냐고.
에릭 슈미트가 지쳐서 쓴 책이 《How Google Works》예요.
답은, 교육 안 시킨다. 이미 스피릿 코드가 맞는 사람을 6개월 걸려서 뽑는다."

구글의 인터뷰 레포팅은 3년, 5년, 10년 뒤에 다시 열린다.
내가 뽑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살아남았는지로 나의 인터뷰 실력이 평가된다.
나를 평가하는 게 내가 뽑은 사람의 10년 후 성과인 셈이다. 이게 제대로 된 피드백 루프다.


광신도와 컨설턴트 사이

"그럼 이건 종교랑 뭐가 다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피터 틸의 답은 영리하다.

Crazy? Right / Wrong 정체성
컨설팅펌 안 미침 옳을 때도 있음 지금의 돈
광신도(Cult) 미침 Crazy Wrong 교주 개인의 이익
스타트업 미침 Crazy Right 미래의 이익, 사회 진보

<미쳤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은 컨설팅보다 광신도에 가깝다. 단, 옳게 미친 것이라는 조건이 걸린다.>

컨설팅펌은 안전하지만 미래 이익을 설계하지 않는다. 광신도는 미쳤지만 사회를 위한 방향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미쳤지만 옳게 미쳤고, 그 근거는 사회를 진보시키는 기술이다.
이 좁은 틈에서 피터 틸은 자신의 종교를 정당화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책에서 가장 솔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것은 사이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피터 틸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그 노력이 역설적으로 이 일이 사이비와 얼마나 가까운 지대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용기의 책이 된다.


삼성과 애플, 그리고 조화의 힘

Q&A에서 무진 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15년간 함께 일해 온 두 명의 본부장이 있는데, 그 관계의 비결은 세 가지였다고 한다.

  1. 각자의 업무 스타일을 인정해 준 것
  2. 지향하는 서비스 방향이 잘 맞았던 것
  3. 5년 차와 8년 차에 지분을 나눠 준 것

유월 님이 이어받아 말씀하셨다. "여기서 미션까지 공유되면 지분보다 더 강력한 접착제가 됩니다."
페이팔이 한 그대로다.

유월 님

"일하는 스타일과 방식까지 맞추는 건 생산성 시대의 얘기예요.
크리에이티브나 이노베이션에서는, 목적만 합의되면 스타일은 각자가 가져가야 해요.
근데 그거,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존재 자체가 파워가 되어 버려서 굉장히 어려워요."

이 지점이 3주차 내내 유월 님이 반복한 메시지와 이어진다.
거듭제곱의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나머지를 다 합친 것보다 큰 가치를 만든다. 그 한 사람의 스타일을 꺾으면 그 가치가 사라진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일을 통일할 게 아니라 미션을 통일해야 한다.


현업에 비춰 본 질문들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시 나에게 던질 질문들을 솎아 본다.

3주차가 남긴 질문들
  •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간의 50%를 가져가는 "첫 번째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은 미래 가치가 있는가?
  • 나는 Mindset에 갇혀 있는가, Mindshift 중인가? 지금 옮겨 가야 할 입장은 누구의 입장인가?
  • 나는 지금 거듭제곱 그래프의 어느 점에 있는가? 현재가 아닌, 미래 이익의 점으로 그리면 어디인가?
  • 고객이 내 제품/서비스에 대해 갖고 있는 Perceived Value의 상한선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근거는?
  • 내가 들고 있는 "세 원의 교집합" — 중요·미지·Hard but Doable — 을 지금 당장 그릴 수 있는가?
  • 내가 지금 추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불편' 한 가지는 무엇인가?
  • 비밀을 못 찾게 막는 네 관습 — 점진주의·위험회피·무사안일·평평화 — 중 내가 가장 강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 우리 팀에 스톡옵션보다 강한 미션이 있는가? 없다면 한 줄로 쓸 수 있는가?
  • 나는 지금 "뿌리고 기도하는"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는가, 작살을 들고 있는가?
  • 나는 돈으로 움직이는 거래 대상을 가졌는가, 아니면 미션으로 움직이는 '마피아'를 가졌는가?

마무리

다시 《대부》의 어두운 서재로 돌아가 보자.
보나세라는 돈다발을 내밀었지만 거절당했고, 비토를 '대부(Godfather)'이자 '친구'라 부르고 나서야 원하는 것을 얻었다.

3주차 세션이 관통한 구조도 이와 같다.
거듭제곱의 세상에서 압도적 가치를 만드는 것은 자본 그 자체가 아니다.
같은 미래를 믿는 소수의 결속, 즉 계약서 너머의 신뢰로 묶인 '패밀리'다.

피터 틸이 굳이 '마피아'라는 미심쩍은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평균의 함정에 빠진 세상에서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은 지극히 외롭고 위험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느슨한 동료애가 아니다.
스타일의 차이를 존중하되 미션으로 단단히 결속된, 서로의 생존을 책임지는 강력한 '배타적 관계'다.

거듭제곱은 무자비하고, 평균은 우리를 속이며, 용기는 늘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패밀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픈 질문을 스스로 물어볼 수 밖에 없다.
"나는 돈으로 움직이는 거래 대상을 가졌는가, 아니면 미션으로 움직이는 '마피아'를 가졌는가?"
변명도 아니 나오고 나는 다만 한참 동안 묵묵히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